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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거리는 세상

남산 가린다고 철거위기에 놓인 낙원악기상가


남산 가린다고 철거위기에 놓인 낙원상가


종로3가 인사동에 갈때마다 인사동 바로 옆, 8차선 도로위에 세워진 건물인 낙원상가를 촬영해서 포스팅 한번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주말에  낙원상가이 이곳저곳을 사진촬영 하고 포스팅을 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수집하다, 낙원상가가  남산을 가린다고 해서 철거 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종로쪽에서 바라본 낙원상가의 정면모습


낙원상가에는 악기상만 240개, 기네스북에도 등재

조선시대부터 낙원동과 인사동 그리고 익선동 등에는 요정, 술집과 같은 유흥가가 발달되었고 위락시설에는  음악이 분위기를 띄는 데 필수, 광복 이후에도 유명 나이트클럽이 전부 종로거리에 자리를 잡게 되게 되는데, 자연히 낙원동 일대에는 음악인과 연예인이 몰려들었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악기점이 하나둘씩 생겨나서 재래시장터에 도로를 만들고 도로위에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면서 악기전문상가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낙원상가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통기타, 전자기타, 색소폰, 클라리넷 등 국내에서 유통되는 악기는 거의 모두 구할 수 있다. 2~3층에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업주는 227명. 악기상은 모두 240개. 낙원상가 업주들에 따르면 세계 어느 곳에도 낙원상가처럼 악기만을 파는 대형공간은 없어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고한다.

낙원상가는 특히 기타에서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악기 직수입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 깁슨, 마틴 같은 고급 외제 기타를 사려면 반드시 낙원상가를 찾아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웬만한 악기 구입이 가능해져 과거보다는 낙원상가를 찾는 발길이 줄었지만 온라인보다는 가격이 더 싸다고 한다.


낙원상가 1층에 차량이 통행하는 모습


낙원악기상가, 한국음악의 발원지이자 살아있는 역사공간

악기상들에 따르면 밴드뮤직은 1989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노래방반주기의 보급·확산이 라이브 연주자들의 설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뮤지션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낙원상가 고유 역할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2008년 현재, 온라인상에 음악 동호회가 활발해지면서 이들이 낙원상가로 몰려들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 시간이 많아지면서 중상류층에서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악기 연주는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동호인 모임과 직장인 밴드의 폭발적 증가에서 확인하게 된다. 제가 찾은 이날도 가게마다 동호회로 보이는 사람들의 연주소리도 들려오고, 아이의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나온 가족들도 쉽게 볼수 있었다.


낙원상가 측면에 나 있는 계단


낙원상가는 음악인만의 전용 공간은 아니었다. 낙원상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최대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인기가 높았다. 4층에 있던 허리우드극장은 개봉관으로 유명했다. 특히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해마다 상영해 청소년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낙원상가 3층은 사무실과 국내 최대의 낙원볼링장이 있어서  종로2가에서 밥을 먹고 낙원볼링장이나 허리우드극장(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뿐)에 가는 것은 1970~1980년대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다고한다.


각종 악기가 진열되어있는 2층 내부 모습




피아노와 색소폰







인사동쪽에서 바라본 낙원상가의 측면 모습


낙원상가, 왜 도로위에 건설했나?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인구 증가로 늘어나는 도로 수요 압박에 직면했다. 하지만 도로를 신설할 재원이 없었다. 서울시는 율곡로와 종로를 관통하는 4차선 도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종로와 연결된 삼일로에는 국내 최고층 빌딩인 31빌딩을 건설 중이었다.

서울시는 사유지, 시유지, 국유지가 뒤섞여 있는 곳에 도로를 내기로 한다. 도로를 신설하되 그 위에 상가와 아파트를 짓는 조건이었다. 서울시는 대일건설을 참여시켰다. 1967년 10월 23일 종로구청과 대일건설㈜은 ‘낙원시장 재건사업 시공계약서’를 체결한다. 시공자인 대일건설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공동건축주로서 사유 지주들을 대리한 낙원상가주식회사가 땅을 제공했다. 대일건설 측이 상가 일부와 아파트 분양권을 갖는 조건이었다. 1층에 도로를 내주고 2~15층을 주상복합건물로 사용한 것은 지금도 국내 최초다.


가회동쪽에서 낙원상가 1층도로로 진입하는 자동차들


피맛골 개발로는 성이 안 찬 서울시, 남산 가린다고 없앤다니 행정편의적 발상

낙원상가철거 계획은 서울 도심 4대축(軸)의 하나인 관광문화축 개발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2009년 8월까지 재정비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관광문화를 운운하면서 세계적인 문화자산을 부수겠다는 ‘야심찬’ 발상이다.

비엔나, 프라하, 잘츠부르크…. 이 도시들이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한마디로 구시가(old city)의 매력 때문이다. 이 도시들은 수백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골목길까지 그대로 보존해왔다. 중세 때 만들어진 터널 같은 통로를 지나면서 현대인은 역사와 문화의 향기에 매료된다.

서울의 구시가(舊市街)는 바로 종로통이다. 종로통 양 옆으로 길게 뻗은 길이 저 유명한 피맛길.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기막힌 문화상품이 될 수 있는 피맛길을 참담한 몰골로 만들어놓더니, 그 개발 논리가 또다시 한국음악의 발상지까지 집어삼키려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