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읍에 위치한 대가야박물관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니다.
박물관 뒤로 민둥산 같이 보이는 것이 옛날 대가야 임금님의 무덤이다. 박물관 좌측에도 고분들이 있어 15분 정도면 고분 탐방을 할수가 있지만, 박물관 뒤로 보이는 고분까지는 왕복 한시간 정도는 시간적 여유를 두어야 할것 같다.
대가야 박물관에는 대가야의 건국에서 부터 왕국으로의 번영과 성장, 주변성세등 역사적 자료를 엿볼수 있으며, 전역에 흩어져잇는 대가야 유물들에 대한 상세하고도 방대한 자료를 접할수 있다.
필자의 처가집이 고령이라 처가집 갈때마다 한번씩 대가야 박물관을 한번씩 들렀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고분 촬영을 위해 동이 틀 무렵에 찾아가서 대가야박물관 내에는 입장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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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박물관 옆에는 대가야 시절의 철 생산 기술을 알아보기 위해서 2005년 고령군 쌍림면에서 고대의 방법으로 제철로를 만들어 실험했는데, 그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쌍림면에 있는 고대 철생산 유적 주변에서 철광석을 채취하여 참나무 숯과 함께 넣고 12시간 이상 풀무질로 바람을 불어 넣으면서 철광석을 녹여냈다고 한다. 그 결고 철이 만들어졌고 유리와 같은 찌꺼기도 흘러 나왔다고 한다.
철광석에 자석이 붙어있는 모습
대가야 박물관 바로 왼쪽에는 대가야 왕릉을 그대로 본뜨서 만들 전시관이 있다.
대가야 시절에는 순장을 했는데, 순장은 주인공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 함께 매장하는 장의 행위이다. 이 순장은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때처럼 영혼의 삶이 지속된다"는 계세(繼世)사상에서 행해졌다. 고령읍 지산동 44호분에는 32개의 순장곽 가운데 18기의 순장곽에서 22명의 순장가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대규모의 순장은 대가야국의 왕권의 성장과 사후(死後)세계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가야 왕릉은 산책로가 잘 정리 되어 있어서 고령시민의 아침 운동길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듯 하다.
고분 관광로로 들어선지 5 여분만에 고분들을 만날수 있다. 첫 고분과 함께 정상까지 계속해서 고분들을 있어 정상까지는 힘들지 않게 다녀올수가 있다.
고령군 지산동 주산(主山, 311m)의 암동쪽 능선을 따라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이우어져 있는데, 축조 연대는 대가야 시대로 추정되고, 남쪽의 제일 큰 무덤이 금림 왕릉이라 전하고 있으며. 이외의 대형 고분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1977년부터 경북대와 계명대 박물관에서 고분을 발굴하면서, 고분의 성격이 일부 밝혀져 대가야에 대한 역사 연구가 활발해졌는데 특히 제 44호 고분에서는 중앙에 주석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이 있으며 그 둘레에 32개의 순장을 위한 작은 석곽이 발견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준장제도을 실증적으로 밝혀주고 또한 이 고분이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묘 임을 확인시켜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관,금동관장식품, 금귀고리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토기류등이 있다.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금관이 이 부근에서 출토된 것인데, 경주지역 이외에서 출토된 금관으로는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아침운동을 나온 고령시민과 고분
고분 사이로 잘 정비된 관광로 겸 산책로
처음 만났던 고분을 뒤 돌아본 모습
각각의 고분마다 고유의 번호로 관리되고 있음
올라가다 보니 발목양말이~~ ㅎㅎ
작은사진은 2007년 추석때 이쁜딸 지은양과 함께
고분의 내부모습의 평면도 안내판
주산의 고분중에 제일 큰 고분 44호, 대가야 왕의 순장묘로써 왕릉전시관에서 44호 고분의 실제 내부 모습을 확인할수 있다.
사진 끝으로 보이는 고분을 지나면 고령 향교로 내려갈수 있지만, 여기쯤에서 다시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간다.
엄청만 크기의 고분들과 고분사이의 관광로
고분 뒤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령읍내 전경
들꽃과 고분의 모습
대가야는 56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이끄는 신라군에 의 멸망당했지만, 500여년의 찬란했던 역사를 고령읍 주산의 고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몸소 느껴보았다. 고령국악당에서는 매년 4월쯤에 가야금 축제도 열리는데,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 원래 대가야 사람이였다고 한다. 가실왕의 총애를 받아 왕의 뜻을 받들어 12현금 가야금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12곡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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